Magazine B 72nd Issue: HAY

덴마크의 가구 메이커들이 전통 데니시 디자인의 가치에 함몰된 2002년, 헤이는 전통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현재의 생활상과 기술력을 적용해 ‘뉴 데니시 디자인’을 제시했다. 이후 가구뿐 아니라 인테리어 전반에 걸친 다양한 상품을 통해 영역을 확장하며,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누리는 북유럽 디자인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은 1930년대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전 세계적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겨울이 길어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북유럽 사람들은 인테리어에 더욱 열정을 쏟았는데, 그 결과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 단순함과 오래 쓸 수 있는 견고함이 좋은 제품의 조건이 되었다. 또 당시 유럽을 휩쓴 독일의 모더니즘과 기능주의에 영향을 받아 미니멀하면서 실용적인 디자인이 탄생했다. 1950년대 미국과 캐나다에서 열린 ‹디자인 인 스칸디나비아 Design in Scandinavia› 전시는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이란 용어를 탄생시켰으며, 북유럽 디자인이 유럽을 넘어 북미 가구 시장에까지 진출할 수 있게 해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러던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은 반세기가 지난 2000년대 접어들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노만 코펜하겐 Normann Copenhagen, 무토, 구비, 헤이 등 창립한 지 20년도 채 되지 않은 신생 회사들이 1950년대 옛 영광을 되찾아준 것이다. 이들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을 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급하고자 하는 공통 목표가 있었다.

 

헤이는 2002년 덴마크에서 태어났다. 그들의 비즈니스 파트너가 될 패션 기업 베스트셀러 Bestseller의 창립자 트로엘스 홀크 포블센 Troels Holch Povlsen과 인연이 닿아 자신들의 철학을 담은 새로운 가구 회사를 설립할 계획을 세웠다. 롤프와 메테 헤이, 트로엘스 홀크 포블센은 2002년 코펜하겐에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다음 해 1월 독일 쾰른 국제가구박람회인 IMM 쾰른 IMM Cologne에서 첫 컬렉션을 공개했으며, 코펜하겐 중심부 필레스트레데 Pilestræde에 첫 매장을 열었다. 현재 덴마크를 대표하는 가구 브랜드 헤이가 탄생한 순간이다. 헤이는 좋은 디자인을 좀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데서 시작했다. ‘좋은 디자인과 합리적 가격’이 헤이의 원동력으로 작용한 셈이다.

 

홈 인테리어를 넘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브랜드
롤프와 메테는 회사 내에서 각자 맡은 분야가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다. 둘 다 브랜드 운영이나 상품 결정 같은 굵직한 업무에 관여하지만, 롤프는 주로 가구를 총괄하고 메테는 액세서리와 헤이 키친 마켓을 담당한다. 메테가 맡은 액세서리 라인은 가구를 만들고 남은 원단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던 중 나온 아이디어를 계기로 탄생했다. 생활용품에 디자인 요소를 얹는다는 콘셉트로, 처음 보는 생소한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쓰는 친숙한 제품에 디자인을 더했다. 이는 훌륭한 디자인을 일상에 스며들게 한다는 헤이의 궁극적 목표에 꼭 들어맞는다. 이렇게 공동 대표이자 부부인 두 사람의 완벽한 분담과 협업은 헤이가 홈 인테리어를 넘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브랜드로 성장하도록 해주었다. 최근에 헤이는 주방용품으로 영역을 넓혀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친 소품을 폭넓게 출시하기도 했다. 기존 주방용품이 주로 기능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헤이가 선보인 주방용품은 지금껏 해온 헤이만의 방식대로 디자인과 실용성을 모두 갖추었다.

 

경계와 선입견이 없는 태도
헤이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쟁쟁한 디자이너와 협업하고, 동시에 재능 있는 차세대 디자이너를 발굴해 다양한 컬렉션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코펜하겐 스튜디오에 내부 디자인팀이 있지만, 외부 디자이너와 굵직한 프로젝트를 많이 작업한다. 그중에서도 현재 디자인 신에서 주목받고 있는 부홀렉 형제와의 프로젝트는 헤이의 글로벌 인지도를 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헤이는 부홀렉 형제와 2014년 코펜하겐(CPH) 시리즈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작업했고 2016년에는 배송하기 손쉬운 조립 소파를 특별히 주문해 프레임, 커버, 쿠션 등 세 가지 요소를 분리해 플랫백에 담을 수 있는 캔 소파를 생산했다. 좋은 디자인과 합리적 가격을 넘어 편리한 배달 방식까지 고려한 캔 소파에는 브랜드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후 부홀렉 형제는 아웃도어 가구 시리즈 팔리사데와 80유로 안팎의 저렴한 가격의 플라스틱 의자 엘레멘테어 등을 연이어 발표했다. 2014년 헤이 탤런트 어워드 Hay Talent Award를 진행한 바 있는 헤이는 차세대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데에도 열정을 쏟아왔다. 헤이를 대표하는 의자 중 하나인 히는 헤이 부부가 2004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페어에서 젊은 디자이너들의 전시를 보던 중 히 웰링의 재능을 발견하고 1년 뒤 함께 내놓은 결과물이다. 이후에도 헤이와 히 웰링은 어바웃 어 시리즈를 생산했다. 또 2018년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서는 11명의 차세대 디자이너를 선정하고 ‘이머징 탤런트 프로그램 Emerging Talents Program’을 통해 디자이너들이 자신들의 포트폴리오를 발표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금도 헤이 홈페이지에는 신예 디자이너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는 창구가 따로 있다.

 

 

2002년에 창립해 반세기 전 전설적 디자이너들이 다져놓은 데니시 디자인에 새로움을 불어넣으며 21세기 북유럽 디자인의 명실상부한 대표 주자로 우뚝 선 헤이는 과거의 디자인 문법을 동시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해 수많은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다. “좋은 디자인을 좀 더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게 하겠다”는 이들의 야무진 꿈은 현실이 되어가는 중이다.

 

부홀렉 형제와 캔 소파에 대해 논의 중인 롤프 헤이

 

다국적 기업과 협업하며 성장하는 헤이
2010년대 중반 전 세계적으로 홈 인테리어 산업 시장이 커지면서 헤이는 더욱 과감하고 도전적 행보를 이어갔다. “때로는 다른 산업과 비교해서 가구 산업은 명백한 이유로 그다지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방면에서 우리가 집에 사는 방법을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다른 장르의 브랜드, 혹은 거대 기업과도 언제나 연계해 작업할 수 있는 것이죠.” 롤프 헤이가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협업의 이유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 코스와 몇 년간 협업해온 헤이는 스페인 디자이너 토마스 알론소 Tomas Alonso에게 의뢰해 폴딩 테이블을 선보이는가 하면, 이케아와 함께 스웨덴어로 ‘좋은’이란 뜻의 위펠리그 컬렉션을 내놓았다. 이케아와 함께하는 협업은 헤이가 이케아의 거대하고 간단한 유통망과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단순한 공정을 거쳐 생산한 모노블록 체어는 헤이와 이케아의 협업의 결정체로, 디자인이 가볍고 편안해 인기를 끌었다.

 

아시아를 넘어 북미 시장으로 진출
초창기 직원이 따로 없던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로 시작한 헤이는 창립 20년도 채 되지 않아 200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린 중소기업으로 거듭났다. 코펜하겐에 처음 스튜디오와 매장을 오픈한 후 곧 노르웨이 오슬로를 비롯한 유럽 각지로 뻗어갔다. 그 결과 현재 코펜하겐에는 디자인 스튜디오가 남았으며 창고, 물류, 판매 부서 등은 유틀란트 Jutland 반도에 있는 호르센스 Horsens 본사에 자리잡았다. 현재 숍인숍이나 리테일러를 제외한 공식적인 헤이 스토어는 서울, 상하이, 베이징, 도쿄 등 아시아를 비롯해 전 세계에 30개 가까이 문을 열었다. 헤이는 이 매장들을 직접 운영하는데, 전 세계 매장 어디에서든 헤이만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2018년 11월을 기점으로 헤이는 북미 시장에 진출했다. 북미 시장 진출은 최근에 미국 기업 허먼 밀러 Herman Miller가 헤이의 지분 33%를 인수하며 발 빠르게 진행되었다. 허먼 밀러의 도움으로 현지 가구 제작이 가능해진 헤이는 허먼 밀러의 온라인 몰 디자인 위딘 리치 Design Within Reach(DWR)에서 제품을 판매하며, 공식 온라인 매장을 오픈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미 서부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이로써 헤이는 좀 더 많은 사람이 좋은 디자인을 누리게 하겠다는 브랜드 철학을 완성하는 데 한 걸음 다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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